경북 군위군을 돌아보고
지난 3월의 유적답사날에도 봄비가 추적거려 마음을 산란하게 하더니
또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전국이 가뭄으로 비가 내리는걸
탓할수야 없지만...잔뜩 흐린 날씨였지만 마음을 추스려 집을 나섰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고 좀 쌀쌀한 날씨이긴 했어도
답사하기엔 안성마춤이었다.
지난 화요일 답사엔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는 실장님의 멘트에
목요일을 선택한 우리의 행운을 만끽하며 우리 나라에서 제일 길다는
죽령터널 ( 4.6 km )을 지나 군위를 향해 달렸다.
군위읍 동북쪽에 해발 437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배를 띄운 것 같다고 해서 선방산(船放山)이다.
옛날 선방산 꼭대기에는 배를 띄우고 놀 만큼 큰 못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왔던 당나라 장수들이 여기에서 뱃놀이를 즐기고는 서로들 바위를 던져
못을 메워버렸고 못은 어떠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옹달샘으로
바뀌어 지금도 샘솟는데(과연 그런 옹달샘이 있는지?)
그 이름을 장군샘이라 한다는
산 아래 극락리의 한 할머럼니가 전하는 전설이다.
이 산 중턱에 옹달샘처럼 작고 예쁜 절이 '지보사'(持寶寺)다.
이름을 풀면 " 보배(寶)를 간직(持)한 절"인데
이 절이 지어졌을 때 부터 있었다는
세가지 보배는 말만 전할 뿐
실물이 남아있지 않다.
작고 예쁜 대웅전
대웅전 옆의 般若禪院?
대웅전 보다 높다하여 기둥 뿌리를 잘라 법당보다 낮추었다 한다.
지붕의 모습으로 볼 때 조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그 때문이다.
삼층석탑
본래 극락사란 절에 있었으나 절이 망하여 곡절끝에 지보사로 옮겨옴.
규모는 작지만 빼어난 조각 솜씨와 여러 특색을 보이는 탑이다.
하층기단의 여덟 면에 여덟 마리의 사자를 생생하게 새겼고
상층기단엔 팔부중상을 精彩있게 새겼다.
지보사는 모든게 작다. 그래서 예쁘다.
인각사(麟角寺)
화산의 화려하고 기품 있는 모습이 마치 상상의 동물
기린을 닮았으며
절이 들어선 자리가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지점
이라 하여 '인각사(麟角寺)'라
이름지었다는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의상스님이 창건하였다 전한다.
그로부터 640여 년 뒤
일연스님이 이곳에서 단군신화가 담긴 (三國遺事)를 완성하고
입적할 때까지 5년 동안 머문 삼국유사의 산실이다.
하지만 '울도 담도 없는' 변변한 문하나 갖추지 못한
겨우 고찰이 희미한 흔적을 감지할 따름인게 현재의 인각사로
조계종에서 이제야 발굴이 한창이다.
그래도 이 곳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는 것은 잔편이나마
일연스님의 비가 남아있고 일연스님의 부도가
제 모습을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연스님의 부도
8각의 탑신 전면에 보각국사(普覺國師) 정조지탑(靜照之塔)이라 음각함.
영남의 미소, 고담스런 삼존석굴
'제2석굴암'(第二石窟庵)이라 불리는 삼존석굴(三尊石窟) : 조그맣게 보이는 굴
보존을 위해 접근하지 못하여 사진이 선명하지 못하지만
자연굴을 이용한 유일한 석굴사원이다.
통일신라 초기, 7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대좌를 포함한 본존의 높이가 2.18m로 중후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이 늘씬하다.
삼존석굴 밑의 벚꽃이 만개하여 우리를 반겼다.
한밤마을의 돌담길 (마을 이름 : 大栗里, 栗里, 栗村, 一夜, 大夜 등으로 불림)
한밤마을의 자랑거리인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대청.
한때 학동들의 서당으로 쓰였고 얼마전 까지 마을의 경로당으로 쓰였는데
요새는 마을에 경로당이 새로 지어졌다고 한다.
원래 절의 大鐘閣이 있던 자리에 세운 건물.(경북 유형문화재 제 262호)
한밤마을의 돌담길.....*^^*
대청을 중심으로 모여들고,또 대청에서 퍼져나가는 한밤마을의 고샅길은
한결같이 폭넓은 돌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불입상 : 한밤마을의 옛 길가에 있던 불상으로 마을 사람들은 미륵불로 모시고 있다.
진동단(鎭洞壇)이라 새겨진 돌솟대가 있는 한밤마을의 야외무대
한밤성안의 늙은 소나무들과 샛노란 개나리가 잘 어우러져
우리의 답사를 마감하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